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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1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에스(US)오픈 테니스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에마 라두카누가 트로피를 껴안고 있다. EPA 연합뉴스


세계가 에마 라두카누(22·영국)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2021년 9월의 일이다. 본선 시드도 받지 못한 18살의 무명 선수가 덜컥 유에스(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테니스 역사상 예선부터 시작해 그랜드슬램 대회 정상에 오른 선수는 남녀를 통틀어 그가 처음이었다. 예선 3경기, 본선 7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라두카누의 당시 세계랭킹은 150위에 불과했으니, 이 전설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는 2021년을 대표하는 스포츠 아이돌에 등극한다. 불과 2주 사이 자신을 둘러싼레이젠 주식
우주가 송두리째 재편되는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평정을 추스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후 라두카누는 기대와 인기에 비례하는 비난과 질시, 압박에 허덕이며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고, 개중에 가장 추악한 상대는 스토킹이었다.
스포츠 아이돌을 향한 ‘추악한’ 스토킹
2025년 2월22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여자테니스협회릴게임손오공
(WTA) 챔피언십 2차전 초반 라두카누는 경기를 중단한 뒤 심판에게 향했고, 어깨를 들썩이는 등 불안 증세를 보이며 의자 뒤로 몸을 숨겼다. 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훔치던 라두카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괜찮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약 2분 뒤 안전요원에 의해 관중석에서 한 남성이 퇴출당한 사실을 확인한 이후였다. 문제의 남성은 직전 세 번의 투어 내내 라두황금성포커게임
카누를 따라다녔고 이 경기 전날 밤에는 호텔까지 찾아와 자신의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건네는 따위의 지속적인 접촉을 시도한 인간이었다. 라두카누는 며칠 뒤 인터뷰에서 그 남자가 시야에 들어온 뒤부터 “눈물에 번져 공이 보이지 않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힘겹게 재개한 경기에서는 0 대 2로 졌다.
라두카누를 주의 깊게 지황금성갈가리
켜봐온 테니스 팬이라면 코트 위에서 스토커를 발견하고 정신이 아득해진 그의 반응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됐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과거 유에스오픈 우승 직후 라두카누는 정체 모를 괴한의 스토킹에 시달린 적이 있다. 2021년 11월 암리트 마가르라는 30대 남성이 라두카누의 집 주소를 알아내어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그는 현관에 꽃을 두범양건영 주식
고 가거나 라두카누 아버지의 신발을-라두카누의 것으로 착각해-훔쳤고, 자신이 집에서부터 걸어온 거리(약 37㎞)를 표기한 지도를 남기기도 했다. 일련의 피해 사실은 석 달 뒤인 2022년 2월 법원이 마가르의 스토킹 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5년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 소식이 언론 보도를 타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라두카누는 19살이었다.
중압감은 물론 범죄의 공포와도 싸워야
그렇지 않은 종목이 어디 있으랴마는 테니스는 정신 소모가 큰 스포츠다. 선수들은 코트 위에서 완벽하게 고립된다. 복싱이나 농구처럼 코치진이 야단스럽게 작전을 전달하거나 기운을 북돋워주는 행위는 금지되고, 포인트가 갈리는 순간에 터지는 갈채 외에는 숨죽이고 정숙을 지키는 일이 관객 매너로 통용된다. 정상급 프로 선수들은 미디어와 팬덤의 시선까지 짊어진 채 시즌 내내 쉼 없이 이어지는 투어 속에서 한결같은 태도로 중압감을 관리해야 한다. 광적인 테니스 애호가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이러한 사정을 짚으며 “보통 사람이라면 마음이 둘로 쪼개질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능력”이야말로 위대한 테니스 선수의 자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눈과 귀를 막는 것이야말로 재능의 본질”이라고 그는 썼다.
그러나 이 비정한 진실에 기대어 스토킹으로 고통스러워하는 10대 선수에게 ‘위대함의 대가’를 운운할 수는 없다. 라두카누는 유에스오픈 우승 뒤 그랜드슬램 대회는 물론 WTA 주관 대회에서 단 하나의 트로피도 추가하지 못했다. 한때 10위까지 솟구쳤던 랭킹이 285위까지 내려앉은 적도 있다. 2021년 가을의 전설이 눈부셨던 만큼 그를 시기하고 추락을 바라 마지않는 사람들의 저주가 들끓었고, 미디어는 은근하게 상황을 즐기는 듯 라두카누의 슬럼프를 중계하며 조롱 대열에 올라탔다. 이것만으로도 경쟁과 승패를 도덕률처럼 여기는 엘리트 스포츠의 세계에서 라두카누가 마주해야 했던 중압감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더해 인격을 좀먹는 범죄의 공포와도 싸워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을 경악하게 한다.
이것은 라두카누만의 곤경도 아니고, 몇몇 악한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일탈적 폭력도 아니다. 케이티 볼터, 이가 시비옹테크, 대니엘 콜린스, 코코 고프 등 많은 여성 테니스 선수가 스토킹 피해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1993년에는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혔던 슈테피 그라프의 광팬이 그의 라이벌을 손수 제거하겠다며 데뷔 4년차 신예 모니카 셀레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도 있었다. 영국 가디언은 라두카누 사건 이후 테니스계가 “강박에 가까운 극단적 팬심으로 얽힌 심연과 마주하게 됐다”고 평하며 특히 “인터넷에서는 팬덤과 스토커의 경계가 흐릿해진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온라인 테니스 팬 커뮤니티에서는 노상 선수들의 이동 항공편을 추적하는 논의가 벌어진다. 가장 활발한 게시판은 라두카누 전용 페이지라고 한다.



에마 라두카누가 2021년 7월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윔블던 대회 3라운드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엘리트 선수 향한 ‘승리지상주의’ 점검 필요
테니스 단체들은 악플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회 보안을 강화하는 등 예방책을 강구하고 있다. 제도적 대응도 중요하겠으나 한편으로는 이 폐단의 밑바닥에 운동선수를 위대한 존재로 경배하는 동시에 같은 이유에서 그들도 인간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우리의 습관적 사고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면한 곤란과 관계없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어떤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심리 말이다. 그 심리적 포위망 속에서 라두카누의 라켓도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의 2025년 2월 성적은 1승4패로 부진했다. 모두 스토커가 따라다녔던 대회들이다. 두바이에서 의연한 대처로 자신을 지켜냈던 라두카누는 이어지는 3월 마이애미오픈에서는 4승1패를 기록해 8강에 오르며 반등한다. 롤러코스터 같은 역경 속에서 무엇보다 스스로 보살피는 법을 연마했을 라두카누에게, 건투를 바란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



2022년 9월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하나은행 코리아오픈 단식 32강전에서 에마 라두카누가 공을 받아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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